일본 추리계에 있어…
일본 추리물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마쓰모토 세이초'나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을 듣기 마련이다. 작가의 소설이나 추천글에서 심심찮게 그 이름을 볼 수 있기도 하고 (아껴두었던 세이초의 신작을~이나 란포 상에 빛나는~ 등의.) 일본 내 드라마나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글을 읽을 때면…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은 내게 무력함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몇 년 전 그의 글을 원작으로 한 통속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터라,(본인은 그런 추리물보다는 시대물 등을 쓰고 싶었던 것 같지만) 원작으로 읽고 싶어 소설책을 샀다. 번역서가 없어 원서였다. 일본어에 까막눈이나 다름 없으니 진정 검은 것은 글자요, 누런 것은 종이다. 공부하며 보면 되겠지, 했었는데 시로타에의 다미코에 대한 세 장 정도를 읽고나서는 지쳐 떨어졌다.
몇 년 뒤 세이초에 다시 관심이 생길 무렵, 동네 도서관을 뒤져보았지만 있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의 해설이 들어있는 단편 컬렉션 뿐, 그것도 달랑 상권만. 그나마 없는 것이 어디냐 싶어 빌려 왔는데 평소 미미여사와 워낙 상성이 좋지 않은 터라, 그 책의 활자를 인식하지 못해 두 주간 끙끙대다 그대로 돌려주었다. 이렇게 만나기 힘든 사람이라니, 집중하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포기해야할 성 싶은 나무였다. 후에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장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실제로도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무지하게 만나기 힘든 사람이란다. 어이쿠, 내가 만난 인상이 정확했구나.
나는 글을 쓰고 읽는 행위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세계관은 작고 엄청나다. 그는 문자를 정직하게 받아들여 속임없이 표현한다. 현재 나와있는 수 많은 미사여구들, 말장난들은 그에게서 찾기 힘들다. 모든 문장은 담백하고 간결하다. 필요 없는 문장은 들어있지 않다. 오로지 그는 알고 있는 사실을 숨김없이 말하고, 독자는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투영이라는 단편에서 그는 [사람은 심각한 때일수록 평범한 말을 하는 법이다.](p.151) 고 서술했다. 그의 글도 평범하다. 그러나 지나치기 힘든 매력이 있다. 단편 추리 소설집이니, 추리소설이다. 일반적인 집중력으로 읽고나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 집중, 공기의 무거움을 그의 소설을 읽을 때는 느끼지 않았다. 비범한 것처럼 종일 옥죄는 것이 아니다. 범죄와 트릭에 중심을 두기 보다는 그것을 저지른 인간에 대해, 담백하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가의 세계관은 작고 엄청나다. 겨우 인간의, 특히 그 인간성에 집중해서 결국은 큰 틀이 생긴다. 고작 세상 인구 수 만큼의 크기다. 그가 표현하는 군상 중 비슷한 입장인 사람, 즉 비슷한 위치의 사람의 이야기가 꽤 있다. 특히 추리소설에서 그러하고, 애정에 관한 소설에 대하면 그렇다. 작가의 주제와 문체란 것이 그렇고, 사람 사는 게 비슷비슷하다는 걸 감안하면야 별 것 아니다 싶기도 하지만, 이런 점은 한 작품이 다른 것에 흐려지기도 한다. 다만 그 비슷한 사람에게서도 여러가지 상황에 따른 변모는 상당히 흥미롭다. 드라마화 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악녀 시리즈 (검은 가죽 수첩, 짐승의 길, 나쁜 녀석들)의 여자 주인공이 모두 한 사람(요네쿠라 료코)이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비슷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좌파나 우파에 편향하지 않고 오로지 작품을 위한 성향이 비슷한 인물을 꼽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미야자키의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후배 감독들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인간에게 집중하라. 그들을 관찰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자신 밖에 생각하지 않으면 오타쿠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미야자키의 세계관이 언뜻 마쓰모토가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관찰하는 것과, 인간에 담긴 것의 관찰. 그리고 상당한 양의 왕성한 표현욕과 창작욕.
이 단편집의 내용상으로 비슷한 성향의 책은 단연 오 헨리의 단편집이다. 이유를 들기가 참 애매하다. 익히 유명한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은 물론 20년 후, 마녀의 빵 등에서 보인 오 헨리의 시선에서는 냉소적인 부분마저 보인다. 그 부분도 공통점으로 들 수 있겠지만 그보다 이유가 된 것은 한 소설의 끝이다. 영화로 치면 소리만 남긴 페이드 아웃(fade out : 점점 화면이 사라짐)과 같은 소설의 결말이다. 특히 잠복의 마지막 장면은 20년 후, 귀축의 마지막 장면은 오 헨리의 경관과 찬송가를 떠올리게 했다.
소설의 줄거리를 짧게만 말하자면…
단편 소설이라 그런지, 잠복 외의 줄거리는 거의 나와있지 않아 도입부만 짧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얼굴 :: 한 연극 배우에게 점차 좋은 일이 생긴다. 그것은 그의 니힐리스틱한 얼굴 때문. 그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에 불안해 하면서도 명성의 단 맛을 쉽게 놓칠 수 없는데…
잠복 :: 범인에게서 공범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두 경찰이 각각의 위치에서 잠복하여 또 한 명의 범인을 기다린다. 이 범인은 시한부 인생으로 전 애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데…
귀축 :: 남자는 기술 좋은 인쇄공이다. 전국 인쇄소를 떠돌다 만난 여자와 돈을 모아 도시의 작은 인쇄소를 샀는데, 생활이 안정되자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은…
투영 :: 이름 있는 신문사에서 퇴직하여 시골로 들어간 후 빈둥대던 남자는 이내 지역 신문사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맞이한 사건으로 그의 인생관이 변한다.
목소리 :: 얼굴과 비슷하게 1부와 2부로 나뉜 소설. 전화 교환원인 여자가 잘못 건 전화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던 중인 현장이었다.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 지방 신문사에 한 여자가 "소설이 재미있어 구독을 원한다"는 엽서를 보낸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 여자는…
일 년 반만 기다려 :: 짐승의 길처럼 제목을 잘 읽고 들어가야 하는 단편. 자세한 설명은 생략.
카르네아데스의 널 :: 줄거리보다 특이점. 전의 단편들에서 여성이 주요 키워드였다면, 이 단편에서는-물론 여성의 역할이 크긴 하지만- 마쓰모토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편이다. 특히 후에 나오는 구무라 입장에서의 오쓰루는 예전 오쓰루가 보던 구무라를 보여준다.
다작을 몸소 실현한…
책 날개에게 나온 마쓰모토 세이초의 한 마디. "공부하면서 쓰고, 쓰면서 공부한다."는 문장 단편 [투영]에서 알 수 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증거 자료를 찾는 기자에 하는 신문사 사장의 말이다. [자넨 지금까지 대형 신문사에서 일부분밖에 담당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근시안적인 말을 하는거야. 진상을 통찰하려면 더 크게 눈을 뜨라고. …(중략)… 사건은 그때그때 보이는 것만 허겁지겁 줍기만 해서는 안 돼. 자료는 항상 일상 속에 있어. 그것을 늘…](p.165~p.166)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를 그 때 그 때 찾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틀로 항상 보고 관찰한 것이다. 결국 그는 마흔에 소설가가 된 후 40여년간 장편만 100여편, 중단편을 합쳐 거의 1000여편을 썼다. 1년에 대략 장편 두 세편을 포함해 스물 너댓편을 발표한 것이다. 여든까지 열정적으로 공부한 사람 아닌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