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운전사마저 철학가라는 소리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스스로의 교양을 보이기를 꺼리지 않는데, 그들이 즐겨
말하는 주제가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살롱 문화를 떠올려보면 그럴 만도 하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미셸 투르니에가 철학 책을 냈다. 사랑이란 단어 하나도 32개의 변형을 만들어내는 프랑스인이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목차는
죄다 철학적일 단어고 그게 116개나 된다. 남자와 여자, 유와 차 (유사와 차이), 행위와
힘, 관념론과 리얼리즘, 존재와 무…보기만해도 철학적이라, 관심이 생겨 한 번 펴 보았다가 세 장 읽고
덮을만한 목차들이다. 아 대체 이 인간은 내 뇌를 얼마나 괴롭히려고 이런 주제를 펼치는가!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더니 정말 그 지성의 끝을 보여주려 하는건가!
하지만
책은 몹시 얇고 가볍다. 악명 높은 교수의 시험을 위해 책을 달달 외워야 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차에
족보를 받은 것과 같은 감동(?)이 온다. 얇고 단락이 단순해, 두 가지 주제-두 주제를 짝을 지어 설명한다. 주로 반대되는 개념들이다.-에 보통 너덧 페이지라 읽기 쉽다. 주석이나 설명을 달아야 할 부분은 폰트와 색을 바꿔 본문 자체에 달았기 때문에, 일일이 눈을 아래위로 굴릴 필요가 없어 더욱 좋다. (최근 위즈덤에서
나온 책들은 주로 이런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주석이 아래 달려있지 않아 글을 읽을 때 흐름이 덜 깨져서
좋아한다.)
내용
또한 많은 상식을 요하지 않으며, 기본적인 개념을 잡는 개념서도 아니다. 통용되고 있는 것을 끌어놓았기 때문에 아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개념서는
아니지만 개념서와 같은 위치다. 상반되는, 혹은 비슷한 개념을
옆에 두었기 때문에 자연히 둘을 비교를 하게 되므로 더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