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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I read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오랜만의 서평이라 또 다시 난관에 빠졌다. 어떻게 써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타자를 두드린다. 변명하자면 주어진 열흘 중 책을 읽기 위해 쓸 수 있었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여태 완독하지 못했다. 때문에 내 서평은 불완전하다. 서평을 올려야 하는 시간도 가깝고 어쩌면 이 상태가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고 스포일러가 적어지지 않을까 하는 단촐한 생각이 들었다. 읽은 상태임과 동시에 읽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적을지, 그것이 흥미로워질지, 나 또한 기대하고 있다. 내용은 절반 가량을 읽었으므로, 발단과 전개를 지나, 흥미진진한 부분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족이지만, 현재 내 언어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독서 대신 인터넷의 잡글 만을 보았던 자발적 과실의 실험 결과다. 서평을 이 어설픈 문장에 치를 떠는 이가 없기를! 근래에 독서며 공부를 않으며 머리를 무디게 만든 태만에 반성할 수 있기를!

 
누차 말하지만, 줄거리는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것을 추천한다. 전문가가 요약했고, 가장 흥미를 주는 부분까지 요약했을 테니까. 그리고 책을 검색했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라서.

 
[제노사이드]는 상당히 불편한 소설이다..
 
 이유를 들자면, 강자 혹은 약자의 입장에서 보는 역사에 관한 서술은, 그것이 공정한지 아닌지를 떠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그리고 그 서술의 찬반이 매우 갈리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찬반을 나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되도 않는 소심한 이유로 은근슬쩍 불편해진다. 그것이 작가의 주제이고 목적이라, 독자로서의 의무가 생겨서 말이다.

 
이것이 처음 책을 펼치기 전과 읽는 중에 받은 불편함이라면, 간간히 나오는 영장류의 잔학성에 관한 묘사에 다른 불편함이 있다. 사실에 입각한 내용임에 두렵고, 잔인함에 괴롭다. 작가는 여러 전쟁과 장면을 통해 그들이 하나로 통함을 말하는 듯 하다. 특히 초반의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는 일본과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고, 대부분의 일본인이 이런 표현을 거리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공정하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작가의 말을 충실히 지켰다. 그런 장면에 대해 한국인이 읽기에 어떨지는 한국 독자의 몫이다.

 
흡입력 또한 불편하다. 책이 재미가 없으면 차라리 욕이라도 할 텐데, 이건 무지하게 긴데도 재미있다. 책 페이지가 700에 가깝다. 들고 읽는데 손도 아프고 피곤한데 거 참, 문장 하나하나가 쫀득쫀득해서 다음 페이지만 읽고 자자, 다음 단락만 읽고 자자 한다. 그런데 왜 다 못 읽었냐고 묻지 마시길. 바빠 죽는 와중에 책 읽다가 욕 먹었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나다.

 
일본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장르소설 중 추리/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웬 서양인 이름이 이렇게 나오는지! 처음부터 백악관이네 뭐네 하며 나오는데 어색하지 않다. 물론 동양인이 백악관 이야기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나 또한 동양인인지라, 동양인이 보는 서양인의 괴이함을 몰라서일 수도 있다. 혹은,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일본인이나 미국인이나 외국인이고, 일본 소설이나 미국 소설이나 다 번역서일 따름이라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지도 모른다. 허나 동양인 작가가 서양인 인물을 표현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서양인 작가가 동양인 인물을 등장시켰을 때 작가가 가진 스케일이나 풀어내는 분위기에서 미묘한 마찰과 어색함이 생기기 마련인데 제노사이드에서는 미국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를 드나듦에도 비교적 매끄럽다.

 
구성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과 같이 두 팀, 중간에는 세 팀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각각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있으며 전반팀에서 ??을 준다면, 후반팀은 !!를 주어 스릴러적 면모도 보인다. 흡인력이나 긴장감, 스토리의 고조와 팽창력이 적절하다. 후반에 가서 한 번에 아! 하는 것은 없어도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강약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처럼, 한 화에 기승전결이 있으면서 전체 스토리의 일부가 있다.

 
 비번인 내일 아마도 이 책을 모두 읽을 수 있겠지만, 지금 이 700페이지의 (들고 때리면 고소할 수 있을 법한 두께의!) 책은 충만한 기쁨을 준다. 아껴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보다 이 다음이 어떻지? 하는 궁금함. 덧붙여 마지막 페이지를 미리 봐도 중간 부분에서 너무 떨어진 듯한 느낌이라, 조금만 더 읽으면 결말만 봐도 이해도 갈 법 한데,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읽으면 하면서 한 페이지 한페이지를 전진하게 된다.

 
 이것은 내용의 리뷰라기보다 책의 구성에 대한 리뷰에 가까워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보를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때문에 한 핏줄 도서로 보이는 것들을 몇 권 추천하고자 한다. 다만, 작가 자체의 호불호나 스토리텔링 능력이 아니라 구성 혹은 내용이 그렇다는 것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내용에 따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책들 
   
: 김진명 소설 중 역사에 관한 부류, 댄 브라운의 소설들(특히 디셉션 포인트),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사라진 소녀들, 태양이 사라지던 날 등

 
 -구성에 따라 비슷한 느낌을 갖게 했던 책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듄 시리즈, 최근 출판되고 있는 일본/미국의 추리소설 계열 (빅픽처, 골든슬럼버 등등)



 *본 서평은 북곰(http://www.bookgom.co.kr) 서평단 이벤트로 작성되었으나,
어떤 가이드라인도 제시 받지 않았음을 알립니다.


 참, 혹시 잔학성이 묘사된 글에 대하여 거부감이 있다면 피하기를 바란다. 상당히 세부적이다. 악의가 없는 것은 알겠는데...인용부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침팬지의 묘사이다. 도서에서 언급된 작가의 말처럼 수만명의 인간이 죽는 것보다 수마리의 침팬지의 죽음이 더 크게 보이는 습성이 나에게도 있는가보다. 가장 아래 적은 이유는 이런 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읽는 것을 피하라는 의미로 아래쪽에 표기한다.

 
상당히 심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인데, 저 개인적으로는 마루타나-강점기에 당했던 취급, 혹은 실제 사건과 겹쳐보였던 것이 불편하게 보였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이런 장면이 몇 있으나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글이 한 부분이라도 있을 경우 거부감을 느낀다면 피하는 것이 좋겠다.